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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공예

한국의 도자 역사 - 토기(선사시대, 삼국시대)

by 이나알 2023. 11. 3.

한국 도자기 역사의 시작을 살펴보자면 한반도 땅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선사시대의 토기들은 한반도 전역에 걸친 인류의 자취를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여준다. 현재의 도자기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제작 반복과 수정, 기능의 조절 등 이런 수없이 많은 과정을 거쳤다. 한국의 도자 역사를 살펴보면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조선백자로 이루어진 도자기 역사를 접하게 되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우리 곁을 지켜온 옹기가 있었다. 토기의 함축된 제작 기술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옹기이다. 옛 옹기들을 보면 그 속에 고려청자의 조형과 분청사기, 조선백자의 조형을 모두 관찰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한국의 도자 역사에서 더 큰 의미로 자리 잡기 시작하는 도기 문화에 대한 뿌리이며 역사적 증거이다. 토기에서 이어지는 도기의 맥은 영암 도기나 조선의 도기인 옹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한국 도자기 역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토기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1. 선사시대의 토기
선사시대는 사람이 살다가 간 흔적을 문자로 기록해 두지 못한 역사 이전의 시대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유물을 보면 5, 6천 년 전의 것에 불과하고 6천 년 전의 신석기인들은 돌을 갈아서 석기문화를 만들었으며,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발굴되는 위치나 소지의 성분, 출토 상황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보아 시대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크게 유문 토기, 민무늬토기, 김해식 토기 등으로 나눠진다. 유문 토기는 빗살무늬, 번개무늬, 생선뼈무늬, 격자무늬 등이 있으며, 해안지방인 압록강, 두만강, 한강, 낙동강 강변 등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점이 한곳에서 정착한 농경민들의 생활 용기였다는 것을 확신한다. 유문 토기는 신석기시대 초기에 만들어졌고, 돌이나 동물의 뼈로 빗살무늬 같은 무늬를 음각하였다. 반면 민무늬토기들은 단 한 점도 유문 토기와 함께 발견되지 않았으며, 주로 산간구릉 지대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유문 토기와 크게 다른 점이 있는데 용도 면에서 인골 곁에 부장되거나 인골을 담고 있는 독무덤으로 쓰였던 의기라는 것이다. 민무늬토기는 대부분이 반난형인 기형의 유문 토기와 달리 바닥이 납작한 바리 모양에서부터 배 부분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붉은 간토기에 이르기까지 기형이 다양하다. 붉은 간토기란 철분이 많은 붉은색 점토를 표면에 바르고 매끄럽게 다듬어 구운 토기인데 현대 도자기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세련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선사시대의 토기는 흙가래를 쌓아 올리는 방법인 성형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물레를 사용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김해토기는 물레를 사용하였고, 소성온도도 매우 높았던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소성은 대부분 가마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평지에서 불을 지펴 굽는 노천 소성으로 이루어졌지만, 문양이나 균형이 잡힌 기형 등을 보면 선사시대 사람들의 미의식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2. 삼국시대의 토기
4, 5세기 무렵 고구려, 백제, 신라는 고대 왕국의 틀을 잡으며 정치적, 문화적으로 역사의 시대를 전개하였다. 이때 불교가 도입되었는데 이것이 삼국시대 공예미술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종교적 배경이 되었다. 삼국시대 공예품으로서 대표되는 금속 공예품은 낙랑의 한족이 지녔던 고도화된 공예 기술을 익힌 삼국인 들이 금은의 채광법과 야금술을 더욱 발전시켜 고유의 아름다운 공예품을 만들게 되었고 그 결과로 금관과 여러 장신구를 다량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고구려의 토기류는 안정감이 있는 납작 바닥이 많고 동체가 난형으로 기능적인 항아리 형태이며, 와당으로 조각이 뚜렷하게 두드러져 있어 강건하게 느껴진다. 또한, 도식화된 연꽃무늬, 초문, 수면문 등 선이 굵고 분명한데 이는 고구려인의 강인성을 잘 표현하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고구려의 토기는 백제나 신라의 토기에 비하여 출토의 예가 드물고 소성 기술도 발달하지 못하였다.
백제 토기류의 기형은 항아리와 단지, 합, 세발 달린 잔과 벼루 등이 있고, 토기에 장식된 문양은 물결무늬가 있고 초기의 항아리류에는 압문으로 장식한 격자문과 선문이 많아서 김해토기와 함께 북방의 여운을 느낄 수 있다. 고구려나 신라 토기에 비하여 물레성형 기술이 매우 뛰어나고, 소지도 뛰어난 수비법으로 정선된 것을 사용하였다. 백제의 토기류는 신라의 토기와 비교하였을 때, 소성 기술이 다양해서 고화도 및 저화도로 소성하였고, 시유 토기도 간혹 발견된다.
신라의 토기류는 고분 문화의 성격이 짙어 비현실적인 의기가 대부분이고 기형은 크게 긴목항아리, 굽다리접시, 이형 토기, 토우 등으로 분류된다. 굽다리접시나 긴목항아리의 형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조형미는 신라 토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박하고도 내적인 미의 세계를 지녔다고 평가된다. 이 외에도 와당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종교적인 배경으로 연꽃무늬가 다수 시문 되었다. 신라의 토기류는 선사 말기의 김해토기의 양식이 발달하여 새롭게 전개된 것으로, 4세기 무렵부터 이미 신라 토기로서 특유의 양식과 기법이 정립되었다.

선사시대와 삼국시대의 토기류를 살펴보았는데 한국 도자기 역사에 대해 알아갈수록 상당히 흥미로운 것 같다. 도자 역사에 대해 알아두면 작품을 만들 때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된다. 옛것과 현대의 것을 조합하면 아름답고 창의적인 작품이 나오기 때문에 도자기 역사에 대해서 알아두면 좋다.